[엄마일기] 기록을 하기로 했다.
1. 1년간의 샌디에고 해외연수 생활을 기록하기로 했다. 의대를 입학한 뒤 지금까지 육아휴직 3개월을 제외하고는-물론, 휴직은 분명 "휴"직은 아니었다- 쉬어본 적이 없다. 그날 그날 컨디션이 닿는 한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웠는데,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심했고 늘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찬찬히 바라보고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연구년 준비를 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미국이라는 이국 땅에 도착하여 시차와 물갈이로 며칠 멍하게 지낸 뒤, 정신이 차려보니 내 앞에 수십년간 없던 '시간'이 있었고 곁에 '가족'이 있었다. 아직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 한국에서의 생활보다는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이 시간들을 그냥 흘려버리기가 아깝다. 그래서 기록을 하기로 했다.
1. 남편과 내가 3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세대차이인지 블로그라는 매체가 내게는 퍽 구식으로 느껴진다. 요즘 세대들은 순간을 짧게 남기는 기록이 익숙하다. 내가 그리 젊은 세대는 아니지만, 긴 글을 구구절절 적는 건 이젠 내겐 논문만으로 족하다! 내 기록들은 페북, 인스타, 틱톡, 유튜브 등 SNS에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뭔가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는 기록이지만, 이렇게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시작을 못 할 것 같았다.
1. 샌디에고, 2월 말의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다. 일교차가 심하다. 낮의 햇살은 뜨겁도록 강렬하고, 해가 지고 난 뒤에는 확실히 아직은 겨울이구나 싶었다. 얇은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다. 샌디에고로 오고 난 뒤 가장 큰 변화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수월해졌다는 거다. 완벽한 올빼미족이었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괴로웠다. 그래서 머리맡에 졸음방지껌을 두고 일어나자 마자 입에 넣어서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깨려고도 해봤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눈이 떠진다. 기분좋은 햇살 때문인 것 같다. 어제 일을 하지 않았고, 오늘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떄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날씨는 정말 사람 기분을 행복하게 만든다. 우울증에 광선치료(light therapy)를 하는 이유를 몸소 느끼고 있다.
1. 한국에서 쿠팡이 없었다면 워킹맘을 하기 힘들었을 거다. 다행히 미국에는 아마존이 있었다. 아마존 프라임에 단번에 가입. 도착하기 전부터 필요한 것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물론 1년만 살고 처분해야되는 살림이니 최저가 위주로 가성비를 따지려고 노력했다. 아마존 프레쉬는 쿠팡 로켓 프레쉬랑 비슷한 개념으로 배송 시간을 정확하게 지정할 수 있는데 (쿠팡처럼 무료배송을 위해 최저 35달러 주문을 해야한다), 일반 아마존 배송은 대략적인 배송 날짜를 보고 주문을 하지만 쿠팡만큼 믿을 만 하지는 못하다. 어떤 건 너무 일찍 오고, 어떤 건 너무 늦게 오고, 또 어떤 건 오다가 lost 되었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래도, 아마존이 없었다면 자잘한 살림들을 모두 광활한 마트를 헤매고 찾아서 사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1. 아이들이 다행히 학교를 잘 적응해주고 있다. 같은 반에 한국애들이 4명이나 된단다. 적응에 도움은 되는데 영어 습득이 느릴까 좀 걱정은 된다. 한국에서 워킹맘으로서, 아이들 교육은 어느정도는 포기를 해야된다고 받아들이고는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장래의 선택지에 제한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행복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뭐든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하고 싶다. 그게 현실적으로 아직 공부, 시험, 성적이니 어쩔수 없다.
1. 초4인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공부머리가 있는 아이인지, 앞으로 힘든 수험생활까지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여줄 아이인지, 내 아이인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막연하게 초4부터는 학습량이 많아진다더라, 해서 한국 교과학습을 놓을 수는 없겠다 싶어서, 엘리하이로 교과 진도는 잡아주려고 해지하지 않고 패드를 챙겨왔다. 1,2학기 문제집은 미리 사서 왔고, 패드 학습 시간표를 내가 직접 짜서 수업을 듣게 하고 있다. 수학은 선행이 조금은 필요할 것 같아서 조금 더 속도를 내고, 심화 문제집은 아빠랑 학년에 맞추어서 하도록 했다.
1. 엘리하이는 완벽한 한국식 학원강의다. 시험을 치기 위한 강의. 초등학생부터 일타강사의 강의를 듣고 문제마다 별표를 하면서 수업을 듣게 하는 게 조금 씁쓸하긴 하다. 그래도 어느정도 텐션이 높은 선생님들의 강의가 우리 애들에게는 맞는 것 같다. EBS 강의는 너무 차분하고, 밀크티(체험2주만 했지만)는 강의 퀄리티가 좀 그랬다.(우연히 수학 강의를 봤는데, 왜 저렇게 어렵게 풀이를 해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웅진 AI 패드 학습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수학, 제대로 풀 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인공지능은 대충공주 첫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1. 현재 아이들의 학습에 가장 중요하고도 문제가 되는 영역은, 국어, 어휘, 문해력, 한자어인 것 같다. 그래서 1년간 국어나 독서를 놓아버리면 큰일날 것 같다. 그래서 수시로 어린이조선일보 기사 한두개를 읽고 토의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얘기를 나누다보면, 요즘 아이들의 영상 노출의 폐해가 얼마나 심한지 절감한다. 너무 당연한 단어를 (대부분 한자어) 모른다. 사회나 경제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다. 이런 빈약한 어휘력과 문해력으로 이후 학습할 방대한 양을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 늘 걱정해왔던 부분인데, 어떻게 손을 쓸 여유가 없었고, 아이들 눈높이에서 하나씩 짚어줄 시간이 없었다. 1년 동안 최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책도 같이 읽고, 신문도 같이 읽어야 겠다. 그렇게 다짐한다.
1. 어쨌든 앞으로도 기록을 하기로 했다. 형식은 무형식이다. 수시로 사진을 올리고 설명을 할 수도 있고, 쇼핑한 물건 리뷰를 할 수도 있다. (물론 백프로 내돈내산) 단편적인 순간 순간의 생각들을 이렇게라도 갈무리해 두려고 한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서 읽어보면, 유치하고 미성숙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나름 추억이 될거라 생각한다.
댓글
댓글 쓰기
건강한 댓글 문화를 지켜주세요.